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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고려 개경 지도와 현재의 북한 개성의 위성사진

by 8866 2011. 1. 25.

[알고 읽으면 재미있는, 역사소설 '문익점 목화를 꿈꾸다']

 

 

 

고려 말 개경 지도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도시인 원나라 대도(현재의 베이징 또는 북경)는 네모반듯한 모습입니다. (http://blog.daum.net/nopenpado/16 참조) 그러나 고려의 개경은 주변의 지형지세에 따라 형성된, 보다 자연스러운 형태의 성곽이 둘러싸고 있습니다. 송악산 남쪽으로 궁성과 황성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지금 개성에 있는 만월대는 고려 시대 궁궐의 터 입니다.

 

 

만월대 회경전 터(북한문화재 자료관)

 

 

고려시대 개경의 궁궐 모형(북한 고려박물관) 

 

 

고려시대 개경의 궁궐 모형(롯데월드 민속박물관)

 

 

고려시대 개경의 궁궐 모형(롯데월드 민속박물관)

 

개경을 동서남북으로 가로지르는 도로의 교차점은 십자가라고 하며, 북쪽으로 향하는 길인 남대가 양편에 각종 물건을 파는 시전이 배치되어 있습니다. 이 남대가는 아주 넓어 이곳에서 말을 타고 격구를 즐겼다는 기록도 고려사에 남아있으며, 무신들의 충돌이 있었던 곳이기도 합니다. 더 북쪽으로 올라가 궐 쪽으로 진행하면 행정기관들이 밀집된 관도가 나타납니다.

 

종이와 말은 지전과 마전에서 판매가 이루어졌으며, 유시에서는 기름이 팔리고 있었습니다. 성곽 상부 외측으로 있는 면주동에는 면주와 마포 생산자들이 자리잡고 있었으며, 하단의 수철동에는 쇠를 다루는 장인들이 모여있던 곳입니다. 상인들의 거주지역은 남대가와 십자가 주변으로 시전과 가까운 곳이었습니다.

 

궁성에 접한 남쪽 지역은 정승동이라고 하는데 말 그래로 정승들이 거주하던 곳으로 출퇴근이 자유로운, 궁에 가까운 곳입니다. 목은 이색은 궁성에 우측으로 접한 유동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성균관 바로 아래의 숭문동에는 목은 이색의 아버지이자 문익점의 스승이라 할 수 있는 이곡이 살고 있었습니다. 십자가의 우측지역은 활동으로 이곳에 거주한 유명인사로는 최충헌과 염흥방이 있습니다. 김구용은 서재동에 살고 있었고, 고려의 유명한 문장가인 이규보는 앵계리에 거주하고 있었습니다. 이제현은 수철동에 살고 있었습니다.

 

 

성균관 명륜당(북한문화재 자료관) 

 

조선 시대에 세워진 숭양서원 자리는 원래 정몽주의 옛집입니다. 목청전은 태조 이성계의 옛집, 경덕궁은 태종 이방원의 옛집 자리에 있습니다.  정몽주의 집과 이성계의 집 사이에는 선죽교가 있습니다. 선죽교의 원래 이름은 선지교였고, 정몽주가 죽고난 후 선죽교로 이름이 바뀌었습니다.

 

 

숭양서원(북한문화재 자료관)

 

 

선죽교(북한문화재 자료관) 

 

아래는 구글어스로 본 현재의 개성의 모습입니다. 옛날 도로의 형태는 그대로 유지되어 있습니다. 성균관, 만월대, 숭양서원 그리고 선죽교의 위치를 확인해 보면 어떻게 도시가 변했는지를 가늠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알고 읽으면 재미있는, 역사소설 '문익점 목화를 꿈꾸다']

 

 

문익점 목화를 꿈꾸다 1

문상준

도서출판 아름다운 사람들 2009.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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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익점 목화를 꿈꾸다 2

문상준

도서출판 아름다운 사람들 2009.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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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역사소설] 문익점 목화를 꿈꾸다
글쓴이 : 높은파도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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