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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미술

[일본전통문화론] 일본화 요약정리

by 8866 2009. 7. 9.

 

[일본전통문화론] 일본화 요약정리
글쓴이: 윤기호

 

안녕하세요?
시험 공부 잘 되어가고 있나요?

올해는 전통문화론 시험공부하기가 정말 어렵습니다.
일본화나 그림에 대한 것은 너무 범위가 광범위하여 도대체 어떻게 공부를 해야할지 모르겠습니다.
또 우키요에는 어떻게 해야 할런지...
평소에 부지런히 하지 않고 있다가,
마치 목수가 연장 탓만 하는 격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지만... ㅠㅠ & ㅠㅠ

그렇지 않아도 범위가 교재 전체라 심적 압박감이 짙은데,
이거 공부를 하라는 것인지, 말라는 것인지, 교수님의 의도를 전혀 알 길이 없네요.

그냥 손을 놓고 있자니 불안하고, 그렇다고 교재를 들여다 보아도 막막하기만 하고,
답답한 마음에 간단히 중요 부분을 나름대로 표시하면서 정리해 보았습니다.
부족한 부분은 혼자서만 공부하지 마시고, 저한테도 좀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ㅎㅎㅎ

이 지루한 작업은,
'서현~' 님께서 올려주신 ABBA의 노래를 연속적으로 들으면서 겨우 마칠 수 있었습니다.
모쪼록 기말시험 잘 치루시기 바랍니다.  =(^_^)=   - 不備 -

 

참, 사족 하나!
아래 정리한 내용은, 전부 숙지하시라는 것이 아니라,
교수님이 힌트 주신 것을 염두에 두시고,
중요부분을 표시한 곳에 유의하셔서 교재에 있는 그림을 숙지하라는 의미입니다.


제 4 장 형상화되는 미의식
제 2 과 전통적인 기법과 화제를 지닌 일본화

日本畵 고대인의 생활 미술과 불교 미술의 전래
畵 조몬 시대와 야요이 시대
조몬 시대에 사용하던 토기의 표면에는 조형 예술의 맹아(萌芽)라고도 할 수 있는 여러가지 모양으로 새겨진 선(線)이나
부조(浮彫)된 회화적(繪畵的)인 표현이 나타난다.
또 야요이 시대에 들어가면, 이러한 선으로 건물을 묘사한 토기 조각이 발견되고, 그외에 인물이나 가옥, 곡식 창고, 각종 동물이
그려진 토기나 동탁(銅鐸) 등의 유물이 많이 발견된다.
이러한 토기나 동탁의 표면에 새겨진 회화적인 표현에서 당시 사람들의 생명력이나 약동적인 표현력을 발견할 수 있다.

畵 고분 시대의 고분 벽화
3세기 말부터 7세기까지를 고분(古墳) 시대라 하는데, 이 시기에 들어오면 회화(繪畵)라고 할 수 있는 고분 벽화(古墳壁畵)가 나타난다.
주로 5~6세기의 분묘에 벽화가 많이 그려졌는데, 이 벽화들은 한반도와 지리적으로 가까운 기타큐슈 지방에 국한되어 있다.
이러한 고분에서는 원(円)이나 삼각형 등의 기하학적인 문양과 방패·활·칼 등의 무기, 가옥·배 또는 새나 말 등의 동물과 인물화도
보인다.

畵 아스카 시대의 불교 미술
아스카 시대에 들어와 대륙으로부터 여러 가지 화법이 도입되어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게 된다.
즉, 6세기에 들어온 불교와 함께 불교 미술이 도입된 것이다.
백제로부터 불교와 함께 불교 미술의 수준 높은 기법이 지속적으로 전래되어 보다 높은 문화 단계에 도달하게 되었다.
이처럼 아스카 시대는 불교 미술이 개화(開花)한 시대로, 불교 회화는 백제 화공(畵工)들의 지도로 이루어졌다는 점도 중요한 사실이다.
아스카 시대의 회화 작품 가운데 현재 전해지고 있는 것으로는 호류지의 <다마무시노즈시>와 주구지의 <천수국수장>이 있다.
<다마무시노즈시>는 불상을 안치하는 즈시, 즉 감실인데, 벽면에 투조한 조각이 장식되어 있다.

<천수국수장>은 쇼토쿠 태자가 죽었을 때, 그 부인 중 한 사람이 태자가 극락에 왕생해 있는 모습을 보고 싶어하여 화가인
야마토아야노 마켄, 고마노 가세이, 아야노 누카코리 등을 시켜 만든 가로 1.3미터, 세로 1.3미터로 된 수예 작품이다.
그런데 이 세 사람은 중국계 또는 한국계의 화가였다.

畵 하쿠호 시대의 <금당 벽화>
하쿠호 시대의 회화를 대표하는 작품은 일본 회화사의 걸작인 호류지의 <금당 벽화>와 <다카마쓰즈카 고분 벽화>이다.
호류지의 <금당 벽화>는 하쿠호 미술의 걸작으로 꼽히는데, 크고 작은 20면의 벽화와 비천상(飛天像)을 그린 천장 밑의 12면 벽화,
나한(羅漢)을 그린 작은 벽화, 그리고 최근 발견된 오중탑(五重塔)의 벽화를 총칭하는 것이다.

<금당 벽화>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것은 <아미타여래정토도>라고 불리는 관음보살상인데, 붉은 윤곽선들이 주는 긴장감과
예리함 때문에 높은 평가를 받는다.
<다카마쓰즈카 고분 벽화>는 일본의 고분 벽화 중에서 가장 뛰어난 회화로 평가되는 것으로, 나라(奈良) 부근의 아스카무라에 있다.
벽화 속에 묘사된 여인들의 복장이 고구려 고분과 당나라 공주의 복식과 흡사하다고 하여 화제가 되었다.

畵 나라시대의 정창원
나라 시대에 수도인 헤이조쿄를 중심으로 하여 문화 활동이 이루어졌던 시기는 바로 쇼무 천황 때였다.
쇼무 천황은 국력을 총동원하여 대사찰인 도다이지(東大寺)를 건립하고, 이어서 전국 각지에 고쿠분지와 고쿠분니지를 설치하여
부처가 나라를 지켜 준다는 호국불교의 토대를 쌓았다.
또, 쇼무 천황의 유품은 도다이지의 창고인 정창원(正倉院)에 보관되어 현재까지 전해지고 있다.
이 시대의 회화 작품으로는 <마포보살상>·<기상호악도>·<수하미인도> 등이 있는데, 이 작품들은 모두 정창원에 소장되어 있다.
<마포보살상>은 구름 위에 앉아 있는 보살상을 삼베 위에 먹으로 그린 것으로, 손의 포즈와 공중에 두둥실 떠 있는 듯한 기다란
옷자락, 그리고 그 아래의 구름이 입체감을 강하게 느끼게 해 주는 작품이다.
<기상호악도>는 세 명의 악사와 곡예사 한 명이 흰 코끼리를 타고 춤추는 모습을 그린 것이다.
<수하미인도>는 나무 아래에 있는 미인을 그린 것으로 <조모립녀병풍>이라고 한다.

日本畵  국풍 문화와 일본적인 회화의 발생
畵 헤이안 시대 전기의 회화
헤이안 시대 회화의 역사는 두 시기로 나눌 수 있다. 전기의 문화를 고닌·조간 문화, 그리고 후기의 문화를 후지와라 문화라고 한다.
전기는 헤이안 시대 초기부터 894년에 스가와라 미치자네의 건의로 견당사 파견을 중지하였을 때까지의 약 100년 동안이다.
이시기는 이른바 당풍(唐風) 문화 중심의 시대로, 회화로 말하자면 중국의 화제(畵題)를 모방하는 가라에(唐繪)의 시대였다.
이 시기의 작품 중 현존하는 것으로 <법화당근본만다라>가 있다.

畵 헤이안 시대 야마토에의 확립
헤이안 시대 후기는 국풍 문화 또는 가나 문학으로 대표되는 시기로, 회화에서는 후지와라 불화(仏畵)나
야마토에(倭繪·大和繪)가 나타난 시대이기도 하였다.
이 시기는 아주 다양한 그림이 출현한 시기로 주목된다. 먼저, 우지의 뵤도인(平等院) 봉황당(鳳凰堂) 문에 그려진
<아미타래영도>라는 그림이 유명하다.
또, 와카야마현 고야산에 있는 <아미타래영도>가 유명하다.
헤이안 시대 후기에는 ‘세속화(世俗畵)’라는 장르가 생겼다.
헤이안 시대 말기에 제작되었다고 하는 <겐지모노가타리에마키>나 <시기산연기>, <반다이나곤에코토바> 등의
에마키는 그림(繪)과 그림을 설명하는 말, 즉 고토바(詞)가 있어서 마치 소설 같은 성격을 띤 일본의 독특한 회화 형식이다.
<겐지모노가타리에마키>는12세기 전반에 제작된 헤이안 시대 세속화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헤이안 시대 중기의 대표적인
소설 문학인 『겐지모노가타리』의 54첩(帖)을 소재로 에마키 형식으로 제작한 것이다.

<시기산연기>는 시기산에서 수행하는 고승의 영험에 관한 설화를 두루마리 형식으로 그린 것으로, 3권으로 되어 있다.
또 <반다이나곤에코토바>는 오텐몬(応天門)에 불을 질렀던 반다이나곤의 정치적 음모 사건을 그린 것으로, 특히 불타고
있는 오텐몬에 묘사되어 있는 군중의 표정이나 동작은 활기에 넘치고 색채가 화려하여 헤이안 시대 세속화의 걸작이라고 할 수 있다.
가쿠유의 작품으로 전해지는 <조수인물희화>라는 두루마리 그림이 있는데, 모두 4권으로 자유 활달한 필치로 세태를 풍자하고
있어, 흔히 말하는 해학적인 그림인 도바에(鳥羽繪)의 원조로 평가되고 있다.

日本畵 무사들의 미의식과 사회상을 반영하는 회화
畵 가마쿠라 시대의 새로운 불교와 불교화
가마쿠라 시대의 회화는 헤이안 시대의 회화 기법을 계승하는 한편 송과 원의 그림, 즉 송원화(宋元畵)의 영향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시기이기도 하였다.
에마키 형식의 회화는 전투 장면을 묘사한 갓센에나 소설의 내용을 소재로 하여 그린 모노가타리에를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한편 , 가마쿠라 시대에 새로운 불교 종파를 개조한 종조(宗祖)들의 전기를 그린 고승에마키, 또는 사찰이나 신사의 창건 과정과
영험담(靈驗談)을 그림으로 설명하는 <기타노텐진연기>와 같은 연기회(緣起繪)라는 그림 양식이 생겼다.
또 송원화나 불교의 한 종파인 선종(禪宗)이 들어왔는데, 이는 다음 시기인 무로마치 시대에 수묵화가 발달하게 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畵 불교설화화와 사사연기회
불교설화화(仏敎說話畵)는 불교 경전에 담긴 설화 내용을 그림으로 표현한 것으로, 중생에게 설법하며 포교할 때 시각적인 효과를
높이기 위하여 만들었다.
그림의 형식은 벽에 그리는 벽화, 미닫이문의 맹장지 위에 그리는 쇼지에, 족자에 그리는 가케지쿠에, 두루마리 형식의 에마키,
책 형식의 소시에 등 다양한 종류가 있으며, 또 각각의 상황에 알맞은 형태로 제작되었다.
이러한 설화화 중에서도 가마쿠라 시대의 사찰이나 신사의 연기를 그린 사사연기회(寺社緣起繪)나 고승을 그린 그림 중에 뛰어난
작품이 많다.

畵 <기타노텐진연기> 두루마리
사사연기회 중에서 가장 뛰어난 것은 역시 <기타노텐진연기>라고 할 수 있다.
기타노텐만구의 주신(主神)인 기타노텐진은 스가와라 미치자네라는 실제 인물이 천신 신앙과 결합되어 형성된 신이며,
그가 천신이 되어 숭배받기까지의 경위를 그림으로 그리고 이야기를 적어 넣은 작품이다.
그 외의 작품으로는 와카야마현 고카와데라가 소장하고 있는 <고카와데라연기> 1권을 비롯하여, 가나가와현 고묘지가
소장하고 있는 <당마만다라연기> 2권, 이시야마데라가 소장하고 있는 <석산사연기> 2권 등 다수의 두루마리가
가마쿠라 시대의 작품이다.
우아한 아름다움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가스가권현영험기에마키> 20권은 후지와라씨 일족이 총력을 기울여 당시 문화의
진수(眞髓)를 모아서 제작한 것이다.

畵 고승을 그린 에마키
고승을 그린 그림으로는, 고잔지에 전해지는 <게곤종사에마키> 6권이나 간키코지 등에 전해지는 <잇펜쇼닌에마키> 12권이
가장 뛰어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게곤종사에마키>는 게곤연기라고도 하는데, 조선 화엄종의 개조(開祖)인 원효 대사와 의상 대사의 전기를 그림으로 그린 것이다.
<잇펜쇼닌에마키>는 가마쿠라 신불교의 한 종파인 시종(時宗)의 개조 잇펜의 전기를 그린 것으로, <가스가권현영험기에마키>와
더불어 가마쿠라 시대 두루마리의쌍벽을 이루는 작품이다.
이 <잇펜쇼닌에마키>는 사계절을 그린 사계회나, 유적지나 명승지를 그린 명소회의 계보를 계승하면서 풍속화로 그 영역을
확대해 간 작품인데, 야마토에에 새로운 필법으로 사물을 묘사한 채색이 뛰어난 두루마리이다.
가마쿠라 신불교 계통의 고승의 전기를 그린 조사전회(祖師伝繪)로는 정토종의 개조인 호넨의 전기를 그린 <호넨쇼닌에마키>라는
48권에 이르는 대작이 있다. 또 정토진종의 개조인 신란의 전기를 기초로 한 <신란쇼닌에마키> 등이 있다.

畵 사실적인 초상화 니세에
가마쿠라 시대 회화의 특징으로 사실주의적인 초상화의 발달을 들 수 있다.
이러한 사실 정신에 입각한 가마쿠라 시대의 초상화가 바로 민화처럼 즉흥적으로 인상을 파악하여 그리는 그림인 니세에(似繪)이다 .
니세에로는 가마쿠라 초기의 초상화로 진고지(神護寺)에 전해지는 <미나모토 요리토모의 초상화>, <다이라노 시게모리의 초상화>,
<후지와라 미쓰요시의 초상화>의 3점이 있다. 이 그림들의 작가는 후지와라 다카노부라고 전해진다.
다카노부는 가인(歌人)으로서 저명한 후지와라 데이카의 형으로, 와카에 탁월하였을 뿐만 아니라 초상화를 그리는 데에도 뛰어난
재능을 지니고 있었다고 한다.

畵 사실을 그린 가센에
가선(歌仙)은 와카를 잘 짓는 사람을 칭송하여 이르는 말로서, 가센에(歌仙繪), 즉 가선 그림은 가선을 그린 그림이다.
헤이안 시대에 와카 문학이 유행하고 가마쿠라 시대에 들어와서 가론(歌論)이나 가학(歌學)이 발전하자, 가선들에 대한 존경심이
생겨나 그들의 초상화, 가센에가 앞다투어 그려졌다.
특히, 후지와라 긴토가 선정한 36인의 가선을 화제로 한 가센에가 많이 그려졌다.

畵 모노 가타리에마키는 소설 문학의 계보
헤이안 시대의 왕조 문학과 야마토에의 계보를 이은 두루마리 그림인 모노가타리에마키가 가마쿠라 시대에도 제작되었다.
예를 들면 「스미요시모노가타리」, 「하즈키모노가타리」, 「이세모노가타리」등을 주제로 한 에마키의 제작이다.
<무라사키시키부일기에마키>나<이세모노가타리에마키> 등은 <겐지모노가타리에마키>의 계보를 잇는 작품이다.

畵 갓센에마키는 무가 문화의 산물
가마쿠라 시대에 들어와 무사들이 중심이 된 전투 장면을 그린 그림이 등장한다.
그것이 바로 갓센에마키(合戰繪)이다.
도쿄국립박물관에는 <전구년갓센에마키> 1권과 <후삼년갓센에마키> 3권이 소장되어있다.
또 호겐·헤이지의 전란(戰亂)도 두루마리 형태의 그림으로 나왔는데, 현재 전해지는 것으로는 도쿄국립박물관이나 보스턴미술관
등에 보관되어 있는 <헤이지모노가타리에마키>가 있다.
이러한 갓센에마키 중에 특이한 것으로는 1293년경의 <몽고습래에마키> 2권이 있다.
이 작품은 몽고군의 침공에 대항하여 가마쿠라 막부의 무사로서 참전한 히고노구니(肥後國)의 다케자키 스에나가가 전투가
끝난 뒤에, 자신이 싸우는 모습을 화가에게 그리게 하였다고 한다.
그 외 에마키 가운데는 도쿄국립박물관 소장의 <오부스마사부로에마키> 1권이나 <잇펜쇼닌에마키> 중에 지방 무사나
서민들의 생활 풍속 등을 묘사한 장면이 있다.

畵 중국 송원화의 영향
가마쿠라 불교 중에서 특히 무사 사회에 영향을 미친 종파는 선종(禪宗)이었다.
선종은 에이사이가 송나라에서 돌아와 일본에 임제종을 전한 것을 계기로 시작되었다.
그리고 에이사이의 제자인 도겐은 송나라로 가서 조동종(曹洞宗)을 깨우치고 돌아와 에치젠노쿠니에 에이헤이지(永平寺)를 세우고
포교하였다.
가마쿠라 막부의 요인들 가운데서도 실권자였던 호조씨(北條氏) 일족이나 교토의 귀족들은 조동종보다 임제종을 더 선호하였다.
이어서 송나라에서온 란케이도류에 의해 송나라의 선종 문화가 직접 도입되었고, 호조씨의 보호 아래 가마쿠라의 중요한 5개 사찰인
오산(五山)을 중심으로 송원화(宋元畵)가 중요시되었다.
<잇펜쇼닌에마키> 가운데 깊은 계곡과 눈 덮인 산봉우리의 광경은 바로 당시에 도입된 송원화의 영향이라고 한다.

畵 법맥을 전달하는 초상화 진조
선종 문화가 도입되자 새로이 가라에 계통의 초상화가 그려지는데, 이를 진조(頂相)라고 한다.
진조란 선종에서 고매한 승려의 초상화를 가리키는 말이다.
스승이 제자에게 전법(伝法)을 인정하는 증거로서 자기의 초상을 그리게 하고, 또 그것을 스스로 제자에게 하사한 것이다.
이러한 진조로는 가마쿠라의 겐초지(建長寺)의 승려 <란케이도류의 초상화>가 있다.

畵 무로마치 시대와 도보슈
무로마치 시대의 회화는 기타야마 문화와 히가시야마 문화라고 칭하는 두 가지 큰 갈래의 문화 활동 영역으로 나뉘어 전개되었다.
기타야마 문화는 쇼군 아시카가 요시미쓰가 중심이 되어 교토에 있는 기타야마 산장(山莊)을 중심으로 문화 활동을 한 것에서
유래된 말이다.
또, 히가시야마 문화는 쇼군 아시카가 요시마사가 교토의 히가시야마 산장을 중심으로 문화 활동을 전개한 것에서 유래된 말이다.
특히 요시마사는 주변에 도보슈라고 하는 인재들을 두고 중국에서 수입한 미술품이나 장식용으로 쓰는 귀중품인 가라모노(唐物)를
감정하거나 조형 예술을 기획하도록 하였다.

한편, 중국 수묵화의 기법이 전해지자 마침내 쇼코쿠지(相國寺)의 선승(禪僧)인 셋슈(雪舟)가 일본의 수묵화를 확립하기에 이른다.
또 오닌의 난을 계기로 하여 전국(戰國)다이묘들이 출현하자, 당시 사회의 각 계층에도 변화가 나타난다.
이러한 현상과 더불어 풍속화라는 회화의 한 분야가 성립되기 시작하였다.
무로마치 시대의 말기에는 낙중낙외도병풍이 제작되기 시작한다. 이러한 흐름이 마침내 근세 초기 풍속화라는 형태로 계승되어 갔다.
또 선종의 제약에서 벗어난 가노 모토노부가새로운 시대의 기수로서, 중국화의 기법과 야마토에의 화제를 능숙하게 통합한
가노파(狩野派)를 이루어 다음 시대의 기초를 마련했다.

畵 산수화와 풍경화
산수화는 화가가 마음속에서 생각하는 이상적인 풍경을 표사한 것이다.
고대 중국에서는 산수(山水)를 인(仁)과 지(智)의 표현이라고 생각했다.
또, 그림을 그리는 것은 성인(聖人)과 현인(賢人)의 길(道)과도 일치하는 것이라고 여겼다.
물론 일본의 가마쿠라와 에도 시대에는 그 이외에 고담(枯淡)의 취향을 추구하거나 서정적인 기분을 표현하는 것이 있어서
구체적으로 분명히 어떤 곳의 풍경을 묘사한 것도 넓은 의미의 산수화라고 부를 수 있다.

畵 초창기의 수묵 산수화를 대표하는 민초와 조세쓰
교토 도후쿠지(東福寺)의 그림 그리는 화승(畵僧)이었던 민초는 불교 회화, 채색 초상화, 수묵 산수화 등 다양한 주제의 그림을 남겼다.
조세쓰(如拙)는 교토 쇼코쿠지의 화승으로, 쇼군 아시카가 요시모치의 명령을 받들어 호리병으로 메기를 잡으려는 노인의 우화를
묘사한 <표점도>라는 그림을 그렸다.
이 그림에서는 수묵화 기법이 아주 체계적으로 적용되어 새로운 양식을 만들어 내었다.
그의 새로운 산수화 양식은 교토 쇼코쿠지의 유명한 화승 슈분(周文)이 계승하여 셋슈에게 전승해 주었다.

畵 셋슈
일본 수묵화는 일본적인 화제(畵題)를 묘사하여 이후 일본 회화가 나아갈 방향을 결정짓게 되는데, 이러한 일본 수묵화를 완성한
사람이 바로 쇼코쿠지 출신의 화승인 셋슈였다.
그의 스승 슈분이 중국 송(宋)·원(元)의 수묵화 전통을 일본화(日本化)했다고 한다면, 그 제자인 셋슈는 일본의 감정 표현을
첨가하는 데 성공했다고 평가되고 있다.
셋슈는 쇼군 아시카가 요시마사가 명나라에 파견한 사절단의 일원으로 견명선을 타고 중국에 들어갔다.
그는 일본 그림과는 전혀 다른 대륙의 웅장한 산수를 접함으로써 중국 회화 구도의 비결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귀국한 그는 일본 전역을 여행하면서 산수화를 스케치했다.
이 여행을 통해 그는 일본 산수 풍경에서 빠져서는 안 될 필수적인 요소를 포착하는 능력을 지니게 되었다.
그의 예술의 종합적인 결실은 유명한 작품 <산수장권>에 잘 드러나 있다.
또, <아마노하시다테즈>는 그의 예술이 절정에 이르렀음을 보여 준다.

畵 셋손
셋손(雪村)은 셋슈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었지만 자신이 셋슈의 후계자임을 자부하고 그의 이름 한 자를 따서 셋손이라 하였고,
옥간(玉澗)·목계(牧谿)와 같은 중국 화가들과 슈분·셋슈의 작품을 연구하면서 자신의 작품 세계를 만들어 갔다.
그의 작품 <풍도도>는 자신의 심리 상태를 생생하게 표현한 것으로, 맞바람을 무릅쓰고 항해하는 선박의 모습에서 자신의
심리 상태를 잘 표현한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畵 가사 마사노부·모토노부
무로마치 막부의 어용 화가 계보는 가노 마사노부로 계승되었다.
15~6세기에 새로운 수묵화 기법을 받아들인 여러 화풍 중에서 가노파는 역사적으로큰 영향력을 지녔다.

가노파의 시조 가노 마사노부는 무사 집안에서 태어나 교토에 가서 쇼군 집안의 어용 화가가 된 최초의 인물이다.
그는 당대의 쇼군 아시카가 요시마사의 히가시야마 별장의 장병화(障屛畵)제작에도 관여했다.
장병화는 후스마에와 병풍 그림을 통칭하는 용어이다.
일본 가옥 실내에 칸막이 구실을 하는 맹장지를 바른 미닫이문을 후스마라고 하는데, 이 문종이 위에 그린 그림을 후스마에라고 한다.
마사노부의 아들 가노 모토노부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예술적·사회적 양 측면에서 가노파의 기반을 굳힌 사람이다.
그는 전국 시대 무장들의 기풍에 어울리는 무가적인 강력한 묘사법과 장식성을 겸비한 일본풍과 중국풍을 절충한 작품 양식인
화한(和漢) 절충 양식을 만들어 냈다.
이로써 가노파의 회화가 탄생한 것이다. 바로 이 점이 근세의 무가 사회로부터 환영을 받게 된 이유이다.
그와 가노파의 일족은 일련종의 신자였지만 정토진종의 사찰, 이시야마(石山) 혼간지(本願寺)의 내부 장식은 물론, 많은 선종
사찰에도 그림을 그렸다. 혼간지의 맹장지에 그린 그림이 가장 뛰어난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畵 풍속화의 전개 - <낙중낙외도>와 쇼쿠닌즈쿠시에
무로마치에서 모모야마와 근세 초기에 걸쳐 이른바 근세 초기 풍속화라는 장르의 회화가 전개된다.
오닌의 난으로 불타 버린 교토는 새로운 도시 경관이 형성되었다.
이러한 교토의 새로운 경관을 파노라마 형식으로 묘사한 병풍 그림이 바로 <낙중낙외도>이다.
이것은 이른바 근세 초기 풍속화의 선구적인 작품이다.
<낙중낙외도>는 후세의 도시경관도나 사사명승경관도에 큰 영향을 미쳤다.
또 우에스기 겐신에게 오다 노부나가가 1574년에 보냈다는 <낙중낙외도병풍>은 가노 에이토쿠가 그린 것이라 하는데,
전국 시대에 살았던 두 거물의 정치적·전략적 항쟁과 천하를 제패하기 위한 목표물인 교토의 경관, 그리고 장병화의 대가인
가노 에이토쿠의 젊었을 때의 작품 활동을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아주 흥미로운 작품이다.
한편 헤이안 시대의 가선 그림, 즉 가센에의 계보를 이으면서도 무로마치 시대의 여러 종류의 직업에 종사하고 있는 사람들을
주제로 하여 그린 쇼쿠닌즈쿠시에(職人盡繪)가 등장하는 것은 가마쿠라에서 무로마치에 걸친 시기이다.

畵 모모야마 시대의 화려한 양식
모모야마 시대는 천하 통일이 이루어진 시기였고, 또 남만 문화가 유입됨으로써 기독교와 조총의 전래라고 하는 새로운 문화적인
충격에 의해 예전에는 볼 수 없었던 예술과 회화가 전개되었다.
권력을 장악한 패자(覇者)들이 자신들의 권력을 과시하기 위하여 덴슈가쿠(天守閣)나 저택 등의 큰 거실에 거대한 금벽장병화
(金碧障屛畵)를 제작하게 하였다.
또, 사찰 건조물의 내부에도 맹장지나 벽면에 짙고 화려하게 채색한 그림을 그리게 되었다.

畵 이국 문물을 그리는 남만화
한편, 모모야마 시대에 이국 문화인 남만 문화가 유입되자 회화의 세계에도 영향을 미쳐 기독교와 관련 있는 종교화나 서양풍의
남만화(南蛮畵)가 그려졌으며, 남만 병풍(南蛮屛風)이 제작되기도 하였다.
화제는 이들 서양인의 선박·선교사·흑인·코끼리 등이 중심이 되었다.
그외에 <태서왕사기마도>나 <서양도시도>, 그리고 <마리아 십오현의도> 등이 있다.

畵 장병화에 천부적 재질을 지닌 가노 에이토쿠
1574년, 가노 에이토쿠는 노부나가의 지시로 <낙중낙외도병풍>을 그렸다.
그리고 이어서 노부나가의 아즈치성 내부 장식화도 그렸다.
도요토미 히데요시 또한 에이토쿠를 중용하여 자신의 거성인 오사카성과 교토의 주라쿠다이(聚樂第)의 장식을 맡겼다.
현존하는 걸작품으로 <당사자도병풍>과 다이토구지(大德寺) 주코인(聚光院)의 <매수금도> 등의 작품을 비롯한 장병화가 많다.
그는 금박 조각을 사용한 최초의 화가였다.
도쿄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노송나무를 그린 <회도병풍>은 사방으로 가지가 뻗어 나간 거대한 뒤틀린 노송나무가 넓은 화면
전체를 가득 채우고 있으며, 깊은 골짜기를 나타내는 검푸른 물 부분을 제외하면 배경 전부가 금박 조각으로 된 장식적 구름으로
채워졌다.
그리고 현존하는 또 하나의 작품인 <당사자도 병풍>은 모모야마 시대의 영웅적 정신을 반영하듯이 박력에 넘친 그림이다.

畵 하세가와 도하쿠
가노 에이토쿠와 쌍벽을 이룬 존재가 바로 하세가와 도하쿠였다.
그는 무로마치 수묵화의 정신과 에이토쿠의 새로운 양식을 포섭하여 독자적인 경지를 펼쳤는데, 대표작으로 도쿄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한 쌍의 <송림도병풍>을 들 수 있다.
그는 대화면으로 구성된 채색화를 그려서 궁궐과 사찰을 장식하는 일에도 정력을 다했다.
자신의 화파를 이루었으며,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지시로 교토 지샤쿠인(智積院) 내부를 장식하는 금색 바탕의 <장벽화>를 완성했다.

畵 가이호 유쇼
교토 도호쿠지(東福寺)의 사미승 출신이었던 가이호 유쇼는 수묵화에서자신의 독특한 양식을 이루기 위해 송나라 화가들에게서
배우고자 노력한 사람이다.
그는 아무런 윤곽선도 없이 세밀한 농담 변화의 기법만으로나무·바위·꽃·새들의 입체감과 운동감을 충분히 잘 표현해 냈다.
그의 화풍은 호방한 기질로 가득 차 있는데, 1599년 겐닌지(建仁寺)에 그린 인물·화조·산수의 <금기서화도>가 그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다.

畵 가노 산라쿠
가노 산라쿠(狩野山樂)는 모모야마 시대 후반기를 대표하는 화가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원래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심부름꾼이었는데, 히데요시로부터 그림에 대한 재능을 인정받아 에이토쿠의 조수가 되었다가
수제자이자 수양아들이 되었다.
다른 가노파 화가들이 새로운 정권의 중심지 에도로 떠났지만 그는 계속 교토에 남아 활동하여 그의 자손들은 교가노파(京狩野派)를
형성한다.
교토 묘신지(妙心寺)의 후스마 문은 가노 산라쿠의 작품으로, 기하학적인 바위와 구부러진 나무 묘사는 모모야마 시대 초기 양식의
특징인 역동감과 힘의 표현과는 상당히 거리가 먼, 정제되고 추상에 가까운 또 다른 종류의 미감을 나타낸다.

畵 풍속화의 전개
무로마치에서 모모야마와 근세 초기에 걸쳐 이른바 근세 초기 풍속화라는 장르의 회화가 전개된다.
<낙중낙외도>나 쇼쿠닌즈쿠시에를 비롯한 많은 작품이 나왔다.
이러한 근세 초기 풍속화는 뒷날 우키요에가 성립되는 과정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화려한 시대에 아름답게 가꾸고 잘 차려 입은 부녀자들이나 이색적인 복장을 한 가부키 배우들, 또는 연회를 즐기는 사람들이나
꽃놀이하는 사람, 사냥하는 그림 등도 많이 나왔다.
가노 나가노부의 <화하유락도>는 특히 유명하다.

日本畵 전통을 지키려는 화가와 새로운 전통을 추구하는 화가
畵 에도 시대는 다양한 유파의 발생기
에도 시대의 회화의 세계는 다양한 유파를 형성하였으며, 또 다양한 스타일의 그림을 낳았다.
그러나 이에모토 제도의 성립으로 인해 그림의 구도가 고정화되고 유형화되는 현상도 생겼다.
오사카와 교토에서는 중국의 명나라와 청나라 회화의 영향을 받은 남화(南畵)나 마루야마파(円山派)가 탄생하였다.

서민들의 생활 감각을 잘 반영하고 있는 우키요에는근세 초기 풍속화의 영향을 받으면서 육필화(肉筆畵)로 가부키 배우들이나
가부키 장면 또는 풍경을 그렸고, 스모에 관한 인물화나 풍속화, 또는 야마토에 가운데 각 지방의 유서 깊고 아름다운 명소를 그린
명소회의 계보를 잇는 풍경화로 전개되어 갔다.
우키요에시(浮世繪)라고 불렸던 도시의 화가들이 실력을 다투어 판화 작품을 많이 제작하여 판매하며 도회지의 유행을 선도하였다.
또, 서양풍의 그림은 에도 막부가 기독교와 무관한 난서(蘭書)의 수입을 허가하자 그 가운데에 삽입되어 있던 동판화(銅版畵를
통해서 원근법이나 음영법 등의 서양화 기법을 습득하게 되었다.

畵 에도 시대의 가노파
가노파의 주류는 에이토쿠의 세 손자, 단유, 나오노부, 야스노부로, 이들은 에도 막부의 공식 어용 화가로 활약했다.
특히 단유에게는 교토의 니조조(二條城)을 장식하는 임무가 주어졌다.
이 성의 건물들은 모모야마 시대의 화려하고 거대한 궁전으로, 그중에 오히로마(大廣間)는 단유와 그 조수들의 작품으로 추정되고 있다.
가노 종가를 주축으로 하는 화가는 후스마에시(襖繪師)라는 직함으로 임명되었는데, 이 직함으로 임명된 가노의 집안을 중심으로
하는 에도 가노파 일족은 각 다이묘나 고위 무사계층 또는 부유한 상인들에게 그림을 그려 주었다.
그 결과 권위나 문벌주의에 집착하게 된 단유 이후의 가노파는 신선한 작품 태도보다는 전통을 중시하는 경향에 빠지게 되었다.

畵 다와랴야 소타쓰와 오가타 고린
소타쓰는 무로마치 시대의 세속화로부터 회화적인 발상을 얻었다.
그는 전통적인 야마토에 기법에 서민의 밝고 낙천적인 생활 감정을 담아 독창적인 경지를 개척했다.
요겐인(養源院)의 <무악도병풍>·<풍신뇌신병풍> 등은 주제의 자유스러운 해석, 기지에 뛰어난 합리적인 구도로 고전적
화두에 새로운 생명과 해석을 불어넣었고, 또 수묵화에서도 독특한 야마토에적 기법을 선보였다.
오가타 고린은 소타쓰의 계승자라고 평할 수 있다.
그는 집안의 부를 바탕으로 사치스럽고 향락적인 생활을 마음껏 즐길 수 있었다.
그 결과, 그는 물려받은 재산 거의 대부분을 탕진하였고, 파산 상태가 되자 생계를 위해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리게 되었다.
도쿄의 네즈미술관에 있는 한 쌍의 병풍 <연자화도병풍>은 『이세모노가타리』의 내용 중에서 취한 것으로, 만개한 연자화를
황금색 바탕에 화려하게 묘사했다.
그의 천재성은 한 쌍의 <홍백매도병풍>에 잘 나타나고 있다.

畵 문인들의 남화
당시에는 생계를 위해 또는 가업으로 그림을 그려 왔던 전문적인 화가들이 그림을 그리는 경우와, 귀족이나 승려 또는 부유한
상인이나 문인들이 여가를 이용하여 그리는 두 가지 경우가 있었다.
후자의 경우, 교양인으로서의 자부심을 그림에 표출시켜 직업적인 화가와는 다른 그림을 그렸는데, 이를 남화(南畵라고 한다.
이 일본 남화, 즉 문인화(文人畵)를대성시킨 사람이 바로 이케노 다이가이다.
그는 여유 있는 화풍 속에 일본적인 풍경을 그려 넣는 독특한 세계를 표현하였는데, 대표적인 작품으로 <누각산수도>가 있다.

畵 마루야마파와 시조파
객관적으로 사생(寫生)할 것을 주장하여 신선한 화풍을 이룬 것이 교토의 마루야마 오쿄를 중심으로 하는 마루야마파(円山派)와
그를 계승한 마쓰무라 겟케이의 시조파(四條派)이다.
마루야마는 유럽의 투시 화법과 음영법을 배워서 가까운 거리에 있는 동물과 식물의 사생에 주력하였고, 이 방법을 장식화에도
적용하여 <설송도병풍>과 같은 그림을 그렸다.
이러한 화풍에다가 남화의 시정(詩情)을 첨가한 것이 시조파인데, 이러한 화풍을 만들어 낸 사람이 바로 마쓰무라 겟케이로,
<유로군금도병풍>이 있다.

畵 대중 판매용 그림 우키요에
에도 시대에 들어와서 민간 화가들에 의해 가부키나 유곽 또는 기녀를 화제로 하는 비교적 작은 크기의 풍속화가 많이 나왔다.
기녀와 손님이 사랑을 나누는 장면을 묘사한 에로틱한 그림이나 젊은 무사와 귀부인이 연애편지를 주고받는 그림, 스모 선수들을
화제로 한 그림 등이 유명하다.
일본의 특징적인 정서와 풍경을 표현한 우키요에가 새로운 장르로 등장한다.

畵 근세 이후 현대에 이르는 일본화
근세 이후 일본 미술은 서양 미술을 지향하기 시작했다. 회화의 경우에는 양화(洋畵)와 일본화(日本畵)로 대표되는 양풍 미술과
전통 미술의 양대 조류가 확립되었다.
미술 운동 지도자인 오카쿠라 덴신을 중심으로 전통적인 일본화의 미학을 재발견하고 새롭게 인식하자는 운동이 일어나
일반인들도 전통 미술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요코야마 다이칸은 새로운 일본화의 영역을 개척하여 일본화의 영역을 확대하고 일본화의 리더로 활약하며 인기를 모았다.
매년 개최되는 일본미술전람회는 일본 전국 규모와 권위를 자랑하는 최대 미술 전람회이다.
이 밖에도 일본화만을 대상으로 하는 대규모 전시회도 있다.


연 | 습 | 문 | 제
Exercise

01 다음 중 옳은 것은?
① 일본 화가가 그린 그림은 모두 일본화이다.
② 일본화란 메이지 유신 이후 서양에서 수입된 유화와 구별하기 위하여 쓰인 명칭이다.
③ 천수국수장을 그린 사람들은 모두 순수한 일본계의 화가들이었다.
④ 현재 전해지고 있는 나라 시대의 작품으로는 주구사의 다마무시노즈시와 호류지의 천수국수장이 있다.

02 다음은 누구에 관한 설명인가?
모모야마 시대에 장병화를 비롯한 여러 가지 대형 그림에서 재능을 마음껏 발휘한 사람이다.
그는 낙중낙외도(洛中洛外圖)를 비롯하여 오다 노부나가와 도요토미 히데요시 등 당시의 최고 권력자들이 건축한 성이나
저택 내부를 장식하는 그림을 그렸다. 현존하는 걸작품으로 <당사자도병풍(唐獅子圖屛風)> 등이 있다.
① 셋슈(雪舟)     ② 셋손(雪村)     ③ 가노 에이토쿠(狩野永德)     ④ 이케노 다이가( 池大雅)

03 다음은 무슨 그림에 대한 설명인가?
세속의 등장인물이나 풍물 또는 사건을 묘사한 화려한 화면이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연속적으로 전개된다.
① 에마키모노(繪卷     ② 남만화(南蛮畵)     ③ 문인화(文人畵)     ④ 우키요에(浮世繪)

04 다음은 어느 시대 회화의 특징에 대한 것인가?
이 시대의 특징인 사실성(寫實性)은 회화의 세계에서도 크게 표출되었다. 즉, 사실주의적인 초상화가 발달한 것이다.
이러한 사실 정신에 입각한 이 시대의 초상화가 바로 즉흥적으로 인상을 파악하여 그리는 그림인 니세에(似繪)이다.
① 헤이안 시대     ② 가마쿠라 시대     ③ 무로마치 시대     ④ 에도 시대

05 다음 ( ) 안에 들어갈 적당한 단어를 고르시오.
모모야마 시대는 천하 통일이 이루어진 시기였고, 또 남만 문화가 유입됨으로써 기독교와 조총의 전래라고 하는 새로운
문화적인 충격에 의해 예전에는 볼 수 없었던 예술과 회화가 전개되었다. 즉, 전쟁에서 조총이 사용됨으로써 평야 지대에
큰 성곽이 출현하게 되었으며, 이에 수반되어 권력을 장악한 패자들이 자신들의 권력을 과시하기 위하여 천수각이나 저택 등
의 큰 거실에 거대한 (①■)을(를) 제작하게 하였다.
또, 사찰 건조물의 내부에도 맹장지나 벽면에 짙고 화려하게 채색한 그림을 그렸다. 당시권력자들은 마치 자신의 경제력을
과시하기라도 하듯이 화려한 그림들을 많이 그리게 하였는데, 이처럼 화려한 모모야마 시대의 회화 수요에 응한 것이
(②■)을(를) 중심으로 한 가노파였다.
① 금벽장병화, 가노 모토노부     ② 우키요에, 가노 에이토쿠
③ 금벽장병화, 가노 에이토쿠     ④ 우키요에, 가노 모토노부

06 다음은 에도 시대 일본 회화에 관한 설명이다. 옳지 않은 것은?
① 전통을 중시하는 이에모토(家元) 제도의 성립으로 인하여 그림의 구도가 고정화되고 유형화되는 현상도 생겼다.
② 서양의 원근법(遠近法)이나 음영법(陰影法) 등 서양화(西洋畵)의 기법을 습득하였다.
③ 서양화법과 중국화법을 익혀서 다양한 화법과 화제, 다양한 양식으로 일본화의 세계를 전개한 시기였다.
④ 에도 시대에 나타난 우키요에는 쇼군 집안의 어용 화가(御用畵)집단인 가노파(狩野派)가 만들어 낸 새로운 장르였다.

07 다음은 누구에 대한 설명인가?
서민 출신인 그는 가노파가 권위나 문벌주의에 빠지자 전통적인 야마토에 수법으로 서민들의 밝고 낙천적인 생활 감정을 그린
독창적인 세계를 형성했다.
그의 작품으로 <풍신뢰신도병풍(風神賴神圖屛風)>·<원씨물어(源氏物語)>·<송도병풍(松島屛風)> 등이 있다.
① 다와라야 소타쓰(俵屋宗達)       ② 오가타 고린(尾形光琳)
③ 하세가와 도하쿠(長谷川等伯)     ④ 마루야마 오쿄(圓山應擧)

08 다음 ( ) 안에 들어갈 적당한 단어는?
무로마치 막부의 제8대 쇼군 아시카가 요시마사(足利義政)는 주변에 ( )라고 하는 인재들을 두고 중국에서 수입한 미술품이나
장식용으로 쓰는 귀중품인 가라모노(唐物)를 감정하거나 조형 예술을 기획하도록 했다.
이런 지원 속에서 화가들도 이 쇼군을 중심으로 하여 활약하는 경우가 많았다.
① 도보슈     ② 히키쓰케슈     ③ 요리아이슈     ④ 다이묘

09 다음은 무엇에 관한 설명인가?
12세기 전반에 제작된, 헤이안 시대 세속화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헤이안 시대 중기의 대표적인 소설 문학 작품을 소재로
에마키 형식으로 제작한 것이다. 즉, 이 소설 내용의 중요한 장면을 그림으로 그린 것으로, 후세의 세속화에 큰 영향을 미쳤다.
① 원씨물어에마키(源氏物語)         ② 시기산연기(信貴山緣起)
③ 반다이나곤에코토바(伴大納言繪     ④ 아미타래영도(阿彌陀來迎圖)

10 다음 내용은 무엇에 관한 설명인가?
오닌의 난으로 불타 버린 교토는 신흥 무가(武家)나 상인들, 주류업자와 창고업자 등과 같은 상인들을 중심으로 새로 2층짜리
건물을 세워서 새로운 도시 경관이 형성되었다. 이러한 교토의 새로운 경관을 파노라마 형식으로 묘사한 병풍 그림이다.
① 아마노하시다테도     ②산수장권     ③ 추경산수도     ④낙중낙외도

11 다음은 누구에 관한 설명인가?
모모야마 시대에 금벽장병화를 완성한 그는 시대적 요구에 부응한 화가였다고 할 수 있는데, 그의 스케일 크고 막힘 없는 필치는
그야말로 무력으로 천하를 통일하였던 노부나가나 히데요시와 잘 어울리는 화풍이었던 것이다.
현존하는 그의 작품으로는 <당사자도병풍(唐獅子圖屛風)>과 대덕사(大德寺) 취광원(聚光院)의 <매수금도(梅水禽圖)> 등의
작품을 비롯한 장병화가많다.
① 하세가와 도하쿠      ② 가노 에이토쿠     ③ 오가타 고린     ④ 다와라야 소타쓰

12 다음은 어느 시대의 회화에 대한 설명인가?
이 시대에 회화의 세계는 다양한 유파를 형성 하였으며, 또 다양한 스타일의 그림을 낳았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전통을 중시하는 이에모토(家元) 제도의 성립으로 인해 그림의 구도가 고정화되고 유형화되는 현상도 생겼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오사카와 교토에서는 중국의 명나라와 청나라 회화의 영향을 받은 남화(南畵)나 마루야마파(円山派)가 탄생했다.
① 에도 시대    ②헤이안 시대     ③ 무로마치 시대     ④모모야마 시대

13 다음은 무엇에 관한 설명인가?
모모야마 시대에 이국 문화가 유입되자 회화의 세계에도 반영되어 이국적인 작품을 낳았다.
그것은 서양인들의 선박·선교사·흑인·코끼리 등이 중심이 되었다.
① 우키요에    ②금벽장병화     ③ 남화     ④남만화

정 답
1 ②■2 ③■3 ①■4 ②■5 ③■6 ④■7 ①■8 ①■9 ①■10 ④■11 ②■12 ①■13 ④■

방송대일본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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