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해주 블라디보스톡 신한촌
블라디보스톡 지도
신한촌 (1920년)
신한촌의 유래를 살펴보면 1863년 13호의 한인들이 연추(煙秋)의 지신헤 로 이주한 이래 뒤이어 이주해간 한인들은 연해주 동남부 지역, 포시에트 빨디산스크(水淸), 우수리스크(蘇王領), 블라디보스토크(海參威) 등지로 마을을 형성하여 정착했다. 이들 중 1874년 블라디보스토크시에 한인촌이 형성되었 는데 새 땅을 개척한다는 의미를 부여하여 개척리(開拓里)라고 불렀다.
그위치는 블라디보스토크 서남쪽 아무르만 변, 시의 중심에 자리잡고 있었으며 마을 형성 초기에는 한옥식 초가 몇 채가 있었다. 블라디보스토크시의 규 모가 커지고 현대적 도시로 면모를 갖추어가면서 거기에 따르는 도시 근로 자의 수요가 늘어나게 되자 이에 편승, 한인수가 증가하여 1911년 이 마을 이 폐쇄될 때는 400∼500호에 달했다. 러시아당국은 개척리를 그들의 기마병 영지로 책정하면서 겉으로는 한인촌에 만연된 콜레라를 근절한다는 이유를 앞세워 한인들을 강제 철거시켰다. 러시아당국의 명령에 따라 새로 옮겨간 곳이 블라디보스토크시 외곽의 변두리였는데 새로운 한인의 마을이란 뜻으로 신한촌(新韓村)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신한촌 3.1만세운동 (1920년)
신한촌 사건
신한촌 사건(新韓村事件)은 1920년 4월에 연해주 신한촌에서 일본군이 조선인을 대량 학살한 사건이다. 흔히 신한촌 참변 또는 사월 참변이라고 부른다.
배경
1917년 러시아에서 10월 혁명이 일어나자 일본 제국은 이듬해 시베리아로 군대를 파병하였다. (1918년 1월 일본군이 극동에 출병하였다. 러시아 국내는 적군, 백군, 일본군이 혼잡해 전투를 진행했다. 조선인도 각각의 파로 나누어져 싸움에 참가했다.
1918년 8월 29일에는 블라디보스톡의 신한촌에서 일본 군함을 눈앞을 두고 「국치 기념 집회」을 개최했다. 태극기를 내걸어 독립 만세를 외친다.)명분은 시베리아에 거주하는 일본인을 보호한다는 것이었다. 일본군이 시베리아에 출병하여 멘셰비키 측을 후원하면서 1922년에 철수할 때까지 5년 이상 연해주 지역에서 복잡한 내전 상태가 지속되었다.
1920년을 전후하여 일본군은 볼셰비키의 붉은 군대와의 전투에서 수세에 몰리면서 어려운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1920년 3월에는 일본인과 조선인이 많이 거주하는 현재의 우수리스크 지역을 붉은 군대가 공격하여 다수의 일본 민간인이 살해되는 일이 발생했다. 이에 일본군은 보복을 단행하게 되었다.
당시 연해주의 조선인은 제정 러시아의 기존 체제를 지지하는 원호세력과 볼셰비키 혁명파를 지지하는 여호세력으로 나뉘어 있었다. 고려공산당의 전신인 한인사회당을 결성한 여호세력이 좀 더 우세한 편이었고, 멘셰비키 측이 일본군과 합동하여 조선인을 핍박하면서 조선인 사회는 급격히 볼셰비키 쪽으로 기울어졌다.
경과
3월 12일에 붉은 군대의 공격으로 일본 군대가 전멸당하고 민간인까지 학살된 사건에 분개한 일본군은 4월 5일에 조선인 마을인 신한촌을 습격하여 조선인 민간인을 학살하였다. 붉은 군대에 조선인 항일 세력이 가담해 있었기 때문이다. 한민학교와 한민보관 등 신한촌 조선인 사회의 주요 건물에도 방화를 하였다.
신한촌 뿐 아니라 연해주 곳곳에서 살인과 방화, 검거 사태가 이어지면서 이 지역 조선인 사회 지도자인 최재형과 김이직, 엄주필, 황경섭 등이 일본군에게 살해되는 등 다수의 피해자가 나왔다. 블라디보스토크와 우수리스크에서 각각 수십 명의 조선인이 체포되었다.
일본군은 헌병대 분견대를 주둔시키고 자위대라는 보조기구를 설치하여 신한촌을 무력 통제했다. 조선인 사회를 이간시키기 위해 한편으로는 선심 정책을 실시하고 괴뢰 단체를 조직하였다. 친일 단체에 참가한 세력은 주로 조선인 재산가들이었다. 이 사건 이후 항일 운동 기지로서의 신한촌의 역할은 크게 퇴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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