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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편소설 "그림자들의 전쟁" 5

by 8866 2008. 8. 1.

  

 중편소설 " 그림자들의 전쟁"

 

 연재 5                                 

 

 

 2

 


 윤미는 몽마르트언덕의 정상에 위치한 사크르쾨르대성당 건물이 저만큼 바라보이는 가파른 계단에 발을 올려놓았다.
 지리산 사찰로 이어진 절 길도 이렇게 가팔랐다. 그러나 이런 계단이 아니라 자연석으로 이뤄진 암석들과 나무뿌리들로 형성되었고 옆으로는 맑은 계곡물이 흐르고 울창한 숲이 우거져 깊고 아늑했다. 절 입구의 정갈한 약수터는 강보에 둘둘 말린 갓난아기가 버려진 곳이다.

 

 스님. 이 아기가 성불하게 지혜를 주세요.
 

 쪽지 한 장에 아직 얼굴도 가리지 못하는 영아. 그이가 바로 대공大空스님이 젖동냥으로 기른 인당동자스님이다. 윤미는 동자스님과 함께 대웅전으로 이어진 높은 돌계단을 얼마나 오르내렸는지 모른다. 그랬지만 한번도 힘든 줄을 몰랐고 숨이 차지도 않았었다.

 그런데 이곳에만 오면 첫 계단부터 다리맥이 풀리니 웬일인가. 까마득하게 높은 계단과 널찍한 광장에는 관람객들과 성당을 찾은 가톨릭신도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백색의 눈부신 광채를 발산하는 로마비잔틴양식의 성당이 거느린 분위기는 광채보다는 안정감을 주는, 서늘한 푸른색을 거느린 사찰의 경건함이나 정갈함, 은근함보다는 위압감과 거만함을 넘어서 사람의 기를 꺾는 신비한 위용까지 요란해 그녀는 이 앞에 설 때마다 두려움과 공포를 느끼곤 한다.
 “왜 그러고 섰어. 힘들어? 우리 케이블카 탈까.”
 황새걸음으로 둬 계단 앞섰던 카드린 드뇌브가 껑충껑충 뒤돌아 내려온다.
 “교수님은 이상해요. 그냥 성당만 그리시라고 하니.”
 찬란한 햇빛아래 빛나는 80m 높이의 흰색 타원형 돔, 94m의 종루, 18톤의 싸브와야드라종, 그리스도 성모마리아와 아기예수동상들은 지고무상의 하느님의 위엄과 절대권위를 뽐내며 무모한 인간의 의지를 굴복시키고 있었다.
 “줄리아 씬 프랑스국적을 소유한 프랑스시민입니다. 코리언이 아니에요. 프랑스시민이라면 프랑스문화를 체현하는 성당을 그려야지 왜 저 쓸데없는 사찰이나 스님들만을 그리려고 하는 거죠? 그건 동양문화라고요.”
 쓸데없는 사찰과 스님들이라고?!
 드뇌브에게는 그것들보다 성당이 더 애착이 갈지 몰라도 아직까지는, 그렇다 지금 이 순간까지도 윤미에게는 저 사크르대성당보다 지리산의 고풍스런 사찰과 스님이 더 의미가 있다. 목탁과 염불소리로 새벽을 깨우는 산사의 하루, 그녀는 대법당 섬돌에서 사천왕문을 돌아오는 새벽목탁소리의 높고 낮은 절주와 청정한 『천수경』 염송소리에 익숙해있었다.

 

 나모라 다나다라 야야나막 알약바로기제 새바라야

 

『천수경』의 뜻은 몰랐지만 여섯 살 나이에 벌써 토 하나 틀리지 않고 줄줄 외웠었다. 그 뜻이 “삼보에 귀의 합니다!” 이고 삼보란 부처님과 불경과 스님이라는 것도 두 살 연상인 인당스님에게서 들어 알았다. 강보에 싸인 채 절에 버려진 아이-인당스님. 아빠, 엄마가 죽고 고아가 되어 큰어머니 슬하에 들어온 윤미는 늘 동자스님 뒤를 그림자처럼 졸랑졸랑 따라다녔다.
 시도 때도 없이 법고와 경쇠를 두드리기도 하고 도솔천 내원궁까지 그 청아한 소리가 들린다는 대공스님의 살구나무목탁을 대추나무채로 똑딱거리기도 하고 도량안의 대법당, 관음전, 지장전, 약사전, 칠성당, 강원講院, 선방禪房, 후원에 무상출입하며 기물을 주무르고 부처님께 공양한 과일들을 집어먹기도 했지만 대공스님은 이맛살 한번 찌푸린 적이 없었다. 먹고 자는 일 외의 모든 활동이 금지된 선방에 뛰어들어 무념삼매에 빠진 대공스님의 승복자락을 잡아당기며 놀아달라고 조르기도 했지만 스님은 그냥 빙그레 웃기만 할 뿐이었다.
 “큰 스님은 날마다 선방에 앉아서 뭘 생각하세요?”
 그런 물음을 던졌던 것은 절에 들어 간지 3년 만인, 그녀 나이 8살 때의 일이었다. 그녀는 더 이상 참선하는 대공스님의 선방에 뛰어들어 화두삼매를 방해하지도 않았다.
 “사람은 죽어서 어디로 가는가를 화두참구하고 있는 거란다.”
 죽음, 화두, 참구 같은 말들은 그녀가 이해하지 못했다.
 “스님께서는 덥지도 춥지도 않고 다리가 저리고 가렵지도 않으세요? 파리, 모기도 무섭지 않고 졸리지도 않으시냐고요?”
 그즈음 윤미는 사찰공양주인 큰어머니한테서 『초발심경初發心經』을 배웠고 동자스님에게서 『사미율의沙彌律義』를 익혔었다. 의미는 알 수 없었지만 예불을 훔쳐보며 『발원문發願文』도 모두 외워버렸다.

 

 사리자, 색불이공 공불이색 색즉시공 공즉시생 수상형식 역복여시…
 아제 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 사바하

 

인당스님을 졸라 그 뜻을 물었으나 설명을 듣고는 더구나 아리송해졌다. 

 

 사리자여, 있는 것은 없는 것과 다르지 않고 없는 것은 있는 것과 다르지 않다. 있는 것은 곧 없는 것 없는 것은 곧 있는 것이다. 느낌이나 생각 행위나 의식도 마찬가지이다.

 

 윤미는 어린 나이에 그토록 심오한 불법을 흐르는 물처럼 유창하게 설하는 인당스님이 돋보였다. 스님에 대한 그런 존경은 알게 모르게 사모와 연정의 씨앗이 되어 그녀의 어린 가슴에 깊숙이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다. 지금도 그때 인당스님이 들려준 불법은 고스란히 그녀의 머릿속에 간직되어 있다.

 

 괴로움이 모이고 없어지는 길도 없다. 지혜도 없고 얻을 수 있는 것도 없고 얻어진 것도 없다.

 

 어린 사미승이었지만, 강보에 싸여 버려진 불행 아였지만 어린 나이에 벌써 세상에 대한 불만이나 부모에 대한 원망한마디 없이 평화롭기만 하던 인당스님의 초연한 모습이 너무너무 인상적이었다. 열심히 목탁을 두드리고 열심히 염불하고 열심히 수행하고…

 

다음 주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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