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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무지개 그림자" 연재 32

by 8866 2008. 6. 14.

 

 장편소설 "무지개 그림자"

 --교향곡과 말티즈 그리고 철민이 B

 

 연재 32

 

 이런 현상은 아내의 추측에만 그치는 것은 결코 아닐 것이다. 미술작품에도, 시와 소설에서도, 건축과 조각에서도 시공을 초월한 내시각에 의한 포착은 작가들에 의해 예술화될 것이 틀림없다.
 아내는 이번 게임에서 진 쪽은 자신이라는 사실을 승복한 듯 슬그머니 화제를 접고 주방으로 들어가 버린다. 저녁상을 차릴 모양이다.
 그제야 명진은 긴장을 풀며 안도의 숨을 활 내쉬었다. 두 사람이 그날 무슨 말을 했었냐고 따지고 든다면 그는 정말 궁지에 몰리고 말았을 것이다. 거짓말을 할줄 모르는 체질인 명진은 아내의 집요한 공격에 결국은 얼마 버티지 못하고 모든 것을 털어놓고 말았을 것이다. 신경전이 이즈음에서 순리롭게 매듭이 풀려준 것이 다행스럽다.
 사실 그날 현주와 나눈 대화는 정지용에 대한 학술적 담론에 불과했다. 그러나 아내는 설령 남편이 솔직하게 토설했다고 하더라도 절대 그 말을 믿지 않았을 것이다. 듣고 싶은 말만 듣고 보고 싶은 것만 보는 법이다. 지금도 명진의 귀에는 바이올린소리와 트롬본의 소리만 들릴 뿐 호른의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소매물도에서 현주는 명진에게 지금의 저 호른소리와도 같은 존재였다. 보면서도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그저 보여 지는 것만 보는 천진난만한 소녀였다. 보고 싶은 것만 보는 이기주의자였다. 그러나 영희는 보여 지지 않는 것까지 보아내는 지혜로운 사람이었다. 보고 싶지 않은 것까지 보는 이타주의자였다. 그런데 아내는 지금 볼 수 없는 것까지 보려고 하는 예지적 능력마저 원하고 있다.
 명진 자신도 『스토크 바이 네일랜드』에서 볼 수 없는 것까지 보아내려는 예지적 능력을 갈망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그런데 저 지긋지긋한, 인젠 몇 천 번도 넘어 들었을 저 음악에서 그는 이상하게도 듣고 싶은 악기의 연주만을 듣고 있다.
 명진은 저도 모르게 호른의 음향에 청각을 몰입시켰다. 그러나 호른의 온화한 음색은 우렁찬 트롬본소리에 묻혀 분별해 내기가 여간 쉬운 것이 아니었다. 대신 바이올린의 음향도 첼로의 웅글진 음색에 먹혀들어 청각으로부터 소외되고 있었다.
 그렇다면 내가 소매물도에서 무언가를 잘못 보았다는 말인가?
 아니면 대상이 변한건가?
 시장기가 슬슬 발작하기 시작했다.
 소파에서 일어나 주방으로 들어갔다. 주방으로의 이동은 음악과의 거리가 조금이라도 멀어져 그 지배에서 도피할 수 있다는 좋은 점도 있었지만 대신 말티즈와 가까워진다는 불쾌한 면도 있었다.
 철민은 배가 고프다고 끼니독촉을 하더니 정작 저녁상을 다 차려놓고 몇 번이나 불러서야 주방에 나타났다. 여태껏 게임에 몰두했던 모양 그 애의 얼굴이 초췌했다.
 “넌 집에 있으면 종일 게임만 하는 거냐?”
 말티즈에게 엄마의 사랑을 빼앗긴 아들의 모습이 측은했지만 무절제한 생활을 보고 아버지로서 수수방관할 수 없다는 책임감이 앞섰다.
 “재미있잖아요”
 “그 시간이면 영어공부 하겠다.”
 명진은 식탁에 마주앉자 그가 좋아하는 더덕구이에부터 젓가락을 옮겼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가장 먹음직한 더덕구이조각을 향해 이동하던 철민의 젓가락과 허공에서 부딪쳤다.
 명진은 젓가락을 다른 요리에 옮겨갔다.
 “엄마가 오디오볼륨을 너무 높여 영어공부가 안돼요.”
 철민은 아버지와의 힘겨룸에서 십중팔구는 약탈당할 번했던 더덕구이조각을 재빨리 집어서 입안에 넣어버린다. 아직은 어린애인데 책임을 다른 사람에게 은근슬쩍 전가시키는 노련함은 어른 못지않았다.
 “얘는.”
「얘는」이라는 말로 수년 전 소매물도에서의 시간들을 떠올려주며 아내는 시선을 말티즈에게서 아들에게로 이동시켰다. 발등에 떨어진 불부터 꺼야 했기 때문이다. 사실 그녀는 그때 현주의 말에 그저 「얘는」이라는 말만을 했었다. 짤막한 그 말은 의문이기도 했고 책망이기도 했고 귀띔이기도 했고…… 아무튼 표현할 수 있는 모든 의미가 담겨있었다. 그 한마디의 기억이 명진으로 하여금 지나간 과거를 추억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얘는 엄마 때문에 영어공부를 못한 것처럼 말하는구나. 영어공부 할 땐 엄마도 음악을 껐잖아.”
 무슨 영문인지는 몰라도 대학시절 아내의 영어실력은 상당한 수준이어서 누군가 외국어학원에 강사로 추천까지 해줄 정도였다. 무엇보다 발음이 정확했다. 그녀말로는 외국인을 상대로 한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배운 거라고 한다. 어쨌든 덕분에 철민의 영어가정교사를 따로 청할 필요는 없었다.
 “음악만 끄면 되는 거야. 방울이를 훈련시키느라 너 혼자 써봐. 읽어 봐하고 난 내버려두었잖아.”
 아내는 말티즈를 「아가」라고 애칭 하지만 철민은 『방울』이라고 애칭수위를 낮춘다.
 “얘는 정말.”
 소매물도에서 「얘는」할 때의 그녀의 모습은 타인을 이해하는 성숙하고 흉금이 탁 트인 여자로 보였다면 오늘의 그녀는 똑같은 말을 하는데도 구실과 변명을 일삼는 시골아낙을 방불케 한다. 과연 둘 중 어느 모습이 그녀의 진정한 모습일까?
 “얘는 무슨 얜데. 오늘도 방울이를 기다려! 물고와! 하는 걸 길들이느라 종일 떠들었잖아. 게임도 못하게.”
 아내는 벌써 아들과의 정면충돌을 피해 말티즈에게 시선을 쏟고 있었다. 아내는 소형애완견사료인 파피차우 톱쵸이스를 주는 것으로 모자라 일주일에 한번씩 빵, 우유, 물고기, 채소를 주기도 한다. 지금은 닭과 소머리, 돼지 간을 잘게 썰어 푹 삶은 영양식을 미끼로 배뇨습관과 물건 물어뜯기, 앉아, 기다려, 엎드려와 같은 간단한 구령을 따르는 훈련을 시키고 있다. 영양식에 반한 말티즈는 효과가 금방 나타났다. 그러나 늘 먹는 파피차우 톱쵸이스로는 훈련이 잘 진행되지 않았으며 영양식도 바닥이 드러나면 효과를 상실하곤 했다. 그래서 아직도 말티즈는 배뇨습관마저 완전하게 길들이지 못했으며 아무거나 입에 물고 뜯어서 명진의 발길에 채우곤 하는 불행한 신세였다. 말티즈가 관심이 있는 건 배뇨습관이나 훈련이 아니라 맛있는 영양식이었다. 그것은 단지 아내의 관심일 뿐이었다.
 “아빠, 슈퍼맨은 정말 있나요?”
 철민이 식사를 끝내고 주방에서 나가며 느닷없이 한마디 던져왔다.
 “슈퍼맨?”
 그 애의 말을 받아 외우긴 했지만 명진은 언뜻 적당한 정답을 고르지 못했다. 이번에도 철민은 아예 대답 같은 건 기대하지도 않은 듯 아빠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주방에서 나가 버렸다. 철민의 관심은 사람이 날아다닐 수 있다는 사실에 있었던 만큼 명진은 그 애의 의문을 풀어줄 수가 없었다. 철민의 질문은 간단하다면 간단하고 복잡하다면 복잡했다. 거의 철학적 인식론의 문제를 제기하고 있기 때문에 그 대답이 더욱 어려웠다.
 슈퍼맨은 상식적으로도 실존인물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그러나」라는 반문을 제기하며 명진은 주방을 나왔다. 거실 소파에 앉을까 말까 잠시 망설이다가 새롭게 레코드를 갈아 끼운 슈만의 곡이 가득 찬 거실을 지나 서재로 들어갔다.
 「그러나」우리가 믿을 수 있는 건 정말 외시각에 의해 포착된 객관적대상의 이미지들뿐일까? 꿈이나 환상처럼 내시각에 의해 포착된 이미지들은 전혀 믿을 수 없는 것들일까?
 슈퍼맨은 내시각에 의해 포착된 이미지이다. 외시각에서는 전혀 결합될 수 없는 인간과 새의 특징이 합일되어 하나의 새로운 이미지를 창조하고 있다. 내시각은 자신의 독특한 기능을 발휘하여 외시각이 포착한 대상적 이미지의 시공과 특성과 질서를 완전히 무시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외시각은 보여주는 대로 보지만 내시각은 보고 싶은 대로 본다. 욕망을 만족시켜주는 것과 욕망만족에 언제나 결여를 제공하는 것 중에서 과연 어느 쪽이 더 진실한가. 이담 커서 대통령이 되고 싶다는 포부는 현실적으로는 초등학교학생이라는 사실 때문에 과연 무의미할 따름인가.
 추상석이 기억 속에 떠올랐다.
 내가 추상석의 이름을 짓지 못하는 것은 보고 싶은 것을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일까? 만일 어느 날인가 추상석의 이름이 머릿속에 떠올라 작품명을 달아줄 수 있다면 그 이름이 가리키는 수석의 모습은 바로, 다름 아닌 내가 보고 싶었던 모습일까. 아니면 그냥 수석이 원래부터 지니고 있던 모습일까.
 그리고 아내에게서 명진이 보고 싶어 했던 것은 벌써 사라져버렸는가. 지금 명진이 보고 싶어 하는 것은 현주한테만 있을까.
 그리고 또 명진이 존 컨스터블의 그림인 『스토크 바이 네일랜드』에서 보고 싶었던 건 과연 무엇일까.
 수많은 의문들이 사유의 계곡을 홍수처럼 흘러갔다. 그러나 어느 하나도 명확한 해답을 남기고 가는 의문은 없었다.
 그러나 좀 더 세심히 표현을 살펴보면 별로 놀랄 것도 없었다.

 

 새까만 밤이 밀려나가고 밀려와 부딪치고
 물먹은 별이 ,반짝 寶石처럼 백힌다
                                               정지용「유리창 1」
 
 희동그런히 받쳐들었다
 地毬는 蓮닢인양 오므라들고…펴고…
                                                 정지용「바다 2」

 

 위의 시행들에서도 「처럼」,「인양」이라는 문법적 기능을 하는 보조표현을 생략하면 그 표현이 전혀 믿을 수 없는 비현실성을 띠게 됨을 금방 발견할 수 있다.
 
 유리에 별이 박힌다.
 지구는 연잎으로 오므라든다.
 
 비상하는 기능을 가진 슈퍼맨이나 황당하기는 마찬가지이다.「유리」와 「별」의 크기차이, 지구와 연잎의 크기차이 때문에 이러한 결합은 (비유는)비현실적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너무도 싱겁게 「처럼」,「인양」이라는 문법적 보조표현의 도움으로 그러한 비현실적인 황당 성은 쉽게 극복되고 있다.
 슈퍼맨도 사실은 하늘을 나는 기능을 가진 새와 인간적 능력을 가진 사람을 결합시켰을 뿐이다. 다만 문법적구조의 도움이 없이 양자사이가 직접적으로 연결되고 있을 뿐이다.

 다음 주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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