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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학

만해 한용운의 시 오셔요

by 8866 2007. 6. 5.

 

 

  오셔요

  만해 한용운

 

 오셔요. 당신은 오실 때가 되었어요. 어서 오셔요.

 당신은 당신이 오실 때가 언제인지 아십니까.

 당신이 오실 때는 나의 기다리는 때입니다.

 

 당신은 나의 꽃밭에로 오셔요. 나의 꽃밭에는 꽃들이 피어 있습니다. 

 만일 당신을 쫓아오는 사람이 있으면, 당신은 꽃 속으로 들어가서 숨으십시오.

 나는 나비가 되어서 당신 숨은 꽃 위에 가서 앉겠습니다.

 그러면 쫓아오는 사람이 당신을 찾을 수는 없습니다.

 오셔요. 당신은 오실 때가 되었습니다. 어서 오셔요.

 

 당신은 나의 품에로 오셔요. 나의 품에는 보드러운 가슴이 있습니다.

 만일 당신을 쫓아오는 사람이 있으면, 당신은 머리를 숙여서 나의 가슴에 대입시오.

 나의 가슴은 당신이 만질 때에는 물같이 보드러울지마는, 당신의 위험을 위하여는 황금의 칼도 되고, 강철의 방패도 됩니다.

 나의 가슴은 말굽에 밟힌 낙화落花가 될지언정, 당신의 머리가 나의 가슴에서 떨어질 수는 없습니다.

 그러면 쫓아오는 사람이 당신에게  손을 대일 수는 없습니다.

 오셔요. 당신은 오실 때가 되었습니다. 어서 오셔요.

 

 당신은 나의 죽음 속으로 오셔요. 죽음은 당신을 위하여 준비가 언제든지 되어 있습니다.

 만일 당신을 쫓아오는 사람이 있으면, 당신은 나의 죽음의 뒤에 서십시오.

 죽음의 허무와 만능萬能이 하나입니다.

 죽음의 사랑은 무한한 동시에 무궁입니다.

 죽음의 앞에는 군함과 포대砲臺가 티끌이 됩니다.

 그러면 쫓아오는 사람이 당신을 잡을 수는 없습니다.

 오셔요. 당신은 오실 때가 되었습니다. 어서 오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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